첫 인연은 SNS 메시지 한 줄이었다.
지난 AI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평소 눈여겨보던 한 사진작가에게 무작정 메시지를 보냈다.
당시 그는(작가P)는 일본에 머물고 있었고, 한국으로 돌아와도 당진과는 꽤 먼 곳에 있는 경기도민이었다.
내가 만들고 있던 작은 영화제 이야기를 전하며 사진 작품을 함께 올려보는 것이 어떤가 조심스레 물었다.
거창하기는커녕, 출연료는 애초에 없었고, 늘 맨땅에 헤딩하는 나의 방식이 그대로 반영된
판의 시작, 작은 도시에서 열리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어떤 판이 열리는 자그만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흔쾌히 함께해주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국에 들어오는 일정에 맞춰 또 함께하는 다른 작가의 작품까지 함께 보내주었다. 나는 그 사진과 그들의 영상을 받아 AI를 입히며 새로운 영상을 만들었다. 작가가 의도했던 이미지와 전혀 다른 결말을 예고했지만, 정말 다른 의도로 변질되는 것을 내가 내손으로 하는 작업이었다. 어쩌면 그들도 정말 적잖게 당황했을 것이다.
그렇게 당진의 중심에 있는 새로 생긴 공원(승리봉 공원)에서 영화제를 하던 당일, 한창 정신없이 돌아가던 현장이 조금 차분해질 무렵, 그들이 몰래 다녀갔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멀리서, 이렇게 몰래?
작은 시도이다보니, 적극적으로 초대할 수도 없는 나의 수많은 고민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당진에 왔다는 것이다.
그저 자신들이 함께했던 작은 영화제가, 그리고 이곳의 영화제 풍경이 궁금해 당진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영화제가 한창 진행되던 모습을 드론으로 촬영한 것을 선물로 보내주었다.
내가 미쳐 바라보지 못했던 영화제의 풍경이었다.
그들은 말했다. 자신들이 살던 도시에서는 보지 못할, 참 재밌고 따뜻한 도시의 풍경이었다고.
정말 우리의 풍경이 따뜻했을까?
그날의 노을과 바람 풍경은 모두다 완벽했다. 다만 나는 나의 영화와 진행이 신경쓰여
아마 이래저래 불편한 마음들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곳의 풍경을 외지인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꽤나 흥미로운 시민들과 풍경으로 보였나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일까.
꼭 돈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유명한 장소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누군가의 작은 제안 하나, 재미있어 보인다는 마음 하나, 응원해주고 싶다는 마음 하나,
한번 가보고 싶다는 호기심 하나가 사람을 움직이기도 한다.
우리는 흔히 작은 도시의 한계를 이야기한다.
사람이 부족하고, 예산이 부족하고, 시설 기반도 부족하다고.
나역시 그런생각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며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은 도시라고 해서 반드시 작은 관계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당진에서 시작한 작은 시도가 일본에 있던 사람에게 닿고, 또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에게 닿아,
그들의 창작물이 먼저 전해지고, 다시 그 사람들까지 오게 된다.
사진과 AI가 만나고, 서로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하나의 작은 프로젝트를 통해 연결되었다.
돌이켜보면 영화제에서 남은 것은 상영된 작품이나 행사 사진만은 아니었다.
누군가의 마음이 이곳까지 움직여왔다는 사실, 그리고 그 순간을 기록한 작은 영상 하나가 남았다.
어쩌면 지역에서 새로운 일을 만들어간다는 것은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거대한 사업을 만들고, 많은 사람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걸어보고, 작은 판을 만들어보고, 그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이 한 명씩 연결되는 것.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찾아오는 사람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작품을 내어주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마음을 다시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사람들.
작은 도시의 미래를 생각할 때, 나는 이제 이런 장면들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고 싶다.
지역의 가능성은 어쩌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예산이나 규모보다, 어떤 마음으로 사람과 연결되고 새로운 판을 만들어가느냐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그들이 보내온 당진의 풍경처럼,
작은 도시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여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일.
나는 그런 작은 연결들이 쌓이는 과정을 앞으로도 기록해보고 싶다
오늘도 나는 이곳에서 또 어떤 판을 만들어 볼지 생각한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하고싶어지는 그런 판.
그리고 언젠가 지금의 작은 만남들이 서로 연결되어, 새로운 지도가 되어있기를 바라면서.

정말 멋진 이야기네요. 작고 소신 있는 영화제는 늘 감동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