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진의 밤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항구의 크레인들은 붉은 불빛을 천천히 깜빡이며 바다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고, 오래된 공장 굴뚝에서는 아직 식지 않은 열기가 희미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도시가 잠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도시는 언제나 깨어 있었다. 단지 대부분의 인간이 그 떨림을 느끼지 못할 뿐이었다. 그러나 고붕이는 달랐다. 그는 도시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골목 틈에서 스치는 바람의 방향만으로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느꼈고, 건물 벽면에 퍼지는 미세한 균열 소리만으로 어디가 무너질지를 짐작했으며, 사람의 눈빛만 봐도 오늘 밤 그 사람이 울게 될지 웃게 될지를 알 수 있었다. 그는 그런 능력을 원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평범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은 끝까지 그를 평범하게 놔두지 않았다. 고붕이는 오래된 코트를 입고 당진천 근처의 낡은 지하상가 앞에 멈춰 섰다. 이미 폐쇄된 공간이었다. 셔터는 녹슬어 있었고 유리창은 먼지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날 밤만큼은 달랐다. 지면 아래에서 아주 미세한 진동이 올라오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심장이 천천히 뛰는 것 같은 소리였다. 쿵. 쿵. 쿵. 고붕이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붉은 불꽃이 잠깐 그의 얼굴을 비췄다. 그의 오른쪽 눈은 기계였다. 단순한 의안이 아니었다. 검은 금속과 붉은 렌즈가 얽혀 있는 이상한 구조물이었다. 눈동자 안쪽에서는 작은 톱니 같은 빛이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고, 그것은 인간의 기술로 만든 물건처럼 보이지 않았다. 십 년 전, 사람들은 그 사고를 단순한 화재라고 알고 있었다. 오래된 연구시설이 폭발했고 수십 명이 죽었으며 살아남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뉴스는 말했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그날 고붕이는 “문”을 봤다. 현실의 틈이었다. 세상 어딘가와 연결된 거대한 균열. 그리고 그 틈 너머에서 들려오던 목소리. 결속이 약해진다. 그날 이후 그의 삶은 끝났다. 그는 더 이상 인간들 속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형광등 하나가 갑자기 지직거리며 켜졌다. 폐쇄된 지하상가 안이었다. 고붕이는 천천히 셔터를 밀어 올렸다. 녹슨 금속이 비명을 지르듯 갈라졌다. 안쪽 공기는 축축했고 오래된 먼지 냄새와 물비린내가 섞여 있었다. 벽면에는 오래된 벽화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거대한 밧줄을 끌고 있는 그림이었다. 줄다리기였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이상했다. 사람은 백 명인데 그림자는 백한 개였다. 고붕이는 조용히 벽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가장 끝에 있는 작은 그림자를 바라봤다. 그것은 인간처럼 생기지 않았다. 검은 뿔이 달려 있었고 등 뒤에는 날개처럼 보이는 형체가 어둡게 번져 있었다. 순간 지면이 크게 흔들렸다. 쿵—!! 천장에서 먼지가 떨어졌다. 형광등이 깜빡였다. 그리고 벽화 속 밧줄이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고붕이의 기계 눈이 붉게 빛났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목소리가 밀려들었다. 코어 불안정. 결속률 감소. 남해안 축 붕괴 위험. 관측자 확인. 그는 이를 악물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하지만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벽화 속 존재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림인데도 그것은 분명히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것의 눈이 붉게 번쩍였다. 그리고 아주 낮고 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돌아왔구나. 고붕이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는 담배 연기를 천천히 내뿜으며 벽화를 바라봤다. 그리고 피곤한 사람처럼 작게 웃었다. “아니. 난 돌아온 게 아니야.” 그의 기계 눈이 더 강하게 빛났다. “이번엔 끝내러 온 거지.” 그 순간 지하 전체의 전등이 동시에 켜졌다. 수십 개의 형광등이 지직거리며 살아났고, 벽면 곳곳에 숨겨져 있던 붉은 문양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바닥 아래에서 거대한 기계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래전 멈춘 줄 알았던 도시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당진의 밤하늘 위로, 아무도 보지 못한 거대한 그림자가 천천히 눈을 떴다.

비가 오고 있었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일정했지만 이상하게도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리듬이었다. 새벽 두 시를 조금 넘긴 시간, 도시는 거의 잠들어 있었고 골목의 가로등 몇 개만이 희미한 노란빛을 흘리고 있었다. 고붕이는 오래된 방송국 건물 3층에 혼자 앉아 있었다. LED 스크린 전원은 모두 꺼져 있었고 넓은 공연장은 텅 비어 있었다. 낮에는 사람들 목소리와 장비 소음으로 가득한 공간이었지만 밤이 되자 완전히 다른 장소처럼 느껴졌다. 천장 어딘가에서는 금속이 수축하는 소리가 아주 작게 틱, 틱 하고 울렸다. 그는 컵라면 국물을 한입 마시며 모니터를 바라봤다. CCTV 화면에는 비에 젖은 복도가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이상한 점은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계속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화면 안 어딘가에 숨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 고붕이는 피곤한 눈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2시 13분. 그때였다. 가장 끝 복도 카메라 화면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지직— 화면에 노이즈가 끼더니 검은 형체 하나가 프레임 끝에 스쳐 지나갔다. 사람처럼 보였지만 확실하지 않았다. 고붕이는 몸을 조금 앞으로 숙였다. 다시 정상 화면. 텅 빈 복도뿐이었다. 그는 한동안 화면을 노려봤다. “착각인가…”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이번엔 두 번째 카메라에서 형체가 나타났다. 복도 중간쯤. 검은 그림자 같은 것이 천천히 지나갔다. 걷는 게 아니었다.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고붕이의 등줄기를 식은땀이 타고 흘렀다. 그는 급하게 마우스를 움직여 화면을 확대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빈 복도뿐이었다. 그러나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복도 바닥에 물자국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 젖은 발로 걸어간 흔적처럼. 고붕이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연장 안은 지나치게 어두웠다. 스피커와 조명 스탠드들이 마치 사람처럼 서 있었고 검은 커튼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손전등을 들고 복도로 향했다. 철문을 여는 순간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복도는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다. 건물 전체가 숨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물자국은 실제로 존재했다. 바닥 위에 선명하게 이어져 있었다. 누군가 맨발로 걸어간 흔적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발자국 방향이 뒤집혀 있었다. 마치 사람이 앞으로 걸어간 게 아니라 뒤로 걸어간 것처럼. 고붕이는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복도 끝 비상구 문이 아주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삐걱… 삐걱… 바람 때문이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창문은 모두 닫혀 있었다. 그는 침을 삼키며 손전등을 비췄다. 그 순간 문 아래 틈으로 검은 머리카락이 스르르 흘러나왔다. 사람 머리카락이었다. 아주 길고 젖은 머리카락. 고붕이는 숨을 멈췄다. 머리카락은 살아있는 것처럼 바닥을 기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멈췄다. 정적. 너무 조용해서 자신의 심장 소리만 들릴 정도였다. 쿵. 쿵. 쿵. 그리고 문 너머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있어?” 여자아이 목소리였다. 떨리는 숨소리가 섞여 있었다. 고붕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손전등 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때였다. 뒤쪽 복도 끝에서 갑자기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쿵쿵쿵쿵쿵— 누군가 맨발로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소리였다. 고붕이는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분명 소리는 들렸는데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그런데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쿵쿵쿵쿵쿵쿵— 고붕이는 몸이 얼어붙었다.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그리고 바로 귀 옆에서 누군가 속삭였다. “뒤돌아보지 마.” 동시에 복도 끝 형광등이 하나씩 꺼지기 시작했다. 탁. 탁. 탁. 어둠이 점점 가까워졌다. 마지막 불빛이 꺼지기 직전 고붕이는 어둠 속에서 사람 얼굴 하나를 봤다. 눈이 없었다. 입만 찢어질 듯 웃고 있었다. 그리고 완전히 불이 꺼졌다..
